[스크랩] 너를위한노래 - 신달자

2009. 2. 10. 20:23좋은글

 

 

 

 

너를 위한 노래 1...신달자


동트는 새벽에
시의 첫줄을 쓰고
불꽃으로 잦아드는 석양에
시의 마지막 줄을 끝내어
어둠 너울대는 강물에 시를 띄운다

어디까지 갈지 나도 몰라
강물따라 가노라면 너 있는 곳
바로 보이는지 그것도 몰라
다만 나 지금은
내 몸에서 깨어나는 신선한 피
뜨거움으로 일렁이는 처음 떠오르는 말을
하루 한 편의 시로 네게 전하고 싶다

하루 한 편의 시로
광막한 사막의 모래바람 냉정히 떠나 보내고
맨발로 자정의 거리 헤매는 광기
고요히 작별하고
머리카락 물에 잠기는 탐욕도
등 문질러 달래우고

하루 한 편의 시로
네게 조금씩 다가가
신선한 발자국 소리로 너에게
그윽이 배어들고 싶다
그러기 위해
어둠의 강에 조금씩 내 살 허물고
내 굽은 뼈 사정없이 다듬어서
상아피리 같은 맑은 혼의 소리를 자아내는
너를 위한 노래 하나쯤 만들고 싶다
네 영혼이 깨어 더듬어 내게 이르는....







너를 위한 노래 2 ... 신달자


나팔 하나 사고 싶다.
이름없는 손으로 빚어져서
종로거리에 걸려 있는 나팔 하나 사서

너를 향해 무슨 소리 하나 내고 싶다.

내 심신의 힘
있는 대로 쏟아 부어
간장이 터지면 터지더라도
마지막 열정으로 가락 하나 만들어 낸다면
그대여 이름없는 나팔은
너무 거룩해 어디 둘 곳이 없을 것을.

아 그 나팔은
파열한 내 심장
내 혼으로 숨쉬어
내가 아닌 다름 사람이 불어도
너의 이름이 천지를 진동할 것을

나팔 하나 사고 싶다.
밀회의 떨리는 약속 장소를 가듯
일상의 담벼락을 바람처럼 빠져나가
금속의 둔탁한 악기에
내 눈물의 생을 걸러
희열과 환희 그 중 좋은 것
너에게 숨차게 전하고 싶다.








너를 위한 노래 3 ...신달자


첫사랑은 아니다마는
이 울렁거림 얼마나 귀한지
네가 알까 몰라.

말은 속되다
어째서 이리도
주머니마다 먼지 낀 언어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다 버리고 버리고
그러고도 남아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
이 때아닌 별소나기
......울렁거림
네가 알까 몰라.







너를 위한 노래 4 ...신달자


바람 부는 겨울
새벽 역두에 나가고 싶다.

쫓겨난 여자처럼 머리카락을 날리며
긴 코트의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느린 걸음으로
역두를 서성이고 싶다.

그대여 그런 날 새벽에
우연히 널 만날 수는 없을까
나는 수없이 뒤를 돌아보며 약속 없는
너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내가 탈 기차를 보내고
그 다음의 기차를 보내며
시린 가슴으로 떨고 있을 때
두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너를 만날 수는 없을까

새벽 역두에 나가고 싶다.
찬비 뿌리는 새벽
우산을 받쳐들고 역두를 서성이면
멀리 보이는 불빛들의 젖은
그림자 일렁이는 무늬 속으로
너는 보이고 그리고 없고

그러나 나 결코 떠나지 않으며
너를 기다리며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비와 함께 떨어지며
너를 기다리며 그렇게
참으로 어리석은 낭만을 믿으며 나는
겨울 역두에 서 있고 싶다.

늦은 밤 자정인들 어떠랴
축축이 젖은 채로
널 우연히 만날 수만 있다면.

 

 

 

 

 

 


 


너를 위한 노래 5...신달자


한 발자국만 가면 수심 깊은 강
이 쯤에서 너의 이름을 부른다.

바람이 지나온 세월을 찢고 있다
아직은 다 죽지 못해서
내 피 섞인 시간들
울부짖으며 뜯기며 넝마가 되네.

바람은 내 충직한 하수인
흉물스러운 모습들 내 등뒤로 날라 보냈는지
경건히 남은 목숨을 내어 놓고
수심 깊은 강에 먼저 마음이 걸어가는
고요한 명목의 시간
바람도 나와 같이 무릎꿇는다.

하늘의 초승달 은빛 칼처럼 내려다본다
내 무엇을 숨길 수 있으랴
어디를 간들 바람을 피하며
혹은 하늘의 시선을 거스를 수 있느냐

내 이미 수심 깊은 강에 들어섰으니
그대여 나는 너의 이름을 부를 뿐.


 

 


 

 

 

 

너를 위한 노래 6 ...신달자




그 순간이다.
내 몸 안에 상한 새들
푸드득거리며 일제히 날아오르고
내 손등에 떨어지는 빛 바랜 깃털들
어디선가 비춰지는 오묘한 색을 받네.

이상하다.
그냥 몽롱했어.
세상이 정지하고 있었어. 그러나
언 땅을 들어올리는 봄의 힘이
발끝을 뜨겁게 하고 있었어.

방향을 알 필요는 없었지만 방향 몰라
나는 두리번거리며 서서
손을 들어 올리면 무지개라도 잡힐 듯했지.

그래 그 순간이었어.
우주가 나를 덮치는 것 같은
너의 목소리를 내가 들을 때.

 

 

 

 

 


너를 위한 노래 7 ...신달자




출근시간 오산을 지나는 고속도로는

안개로 자욱하다.


그저 오산쯤을 지나간다는 예감 위로

무겁게 다가오는 지상의 구름

그것은 그저 손을 들어라 한다


회색 고문이 무슨 자백을 들으려는지

길에 영문 모를 불을 놓고 있네


내가 먼저 저 위험 거두려면

입 열고 말아

앞을 막고 버티어 선 저 명령

복종하면 하얗게 길 밝혀지는지


그러나 그대여

나는 저 안개에 파묻혀 서럽게 누울지라도


말못하겠네 너에게도 전하지 못한

내 생애 마지막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너를 위한 노래 8 ...신달자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절로 말이 되는 법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절로 바람이 되는 법.


너는 알지 몰라

밤11시 경부고속도로

미친 듯 달리는 불빛물결 속에서

나 한마디 말 껴안고

겨우 어둠을 가르는 것을.


영혼의 봉헌처럼 엄숙하게

말의 완성에 이르는

하나의 말

진통 끝에 태어나는

따뜻한 생명


그대여

나는 지금 사무친다.


 
 


 

 

 

 

너를 위한 노래 9 ...신달자




산은

산만큼의

말줄임표


침묵 속에서

차고 빛나는

하나의 정신으로 남기 위해서


나는

나의 사랑만한

말줄임표


 

 

 

 

 

 

 

 

 

너를 위한 노래 10 ... 신달자




문 잠긴 방에도

새벽 오듯


창 없는 감옥에도

봄 오듯


눈감고 있는 내게

너 온다.


빛의 속도로

어둠을 뚫고.



 
A great night for freedom

 

 

 

 

 

 

To Dori / Stamatis spanoudak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