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10. 22:40ㆍ인테리어배우기
>>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안쪽으로 윤곽을 드러낸 레몬하우스. 일반적으로 산에서부터 내려다보는 위치에 집을 짓지만 이곳은 산을 마주보고 올려다보도록 지어졌다.
숨겨진 L자 모양의 집
비포장도로 비탈길에 들어서자 하나, 둘 전원주택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 골목을 10m쯤 올라가면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네모난 박스형 건물이 한 채 있다. 거대한 프레임의 철문을 지나 잔디밭을 관통한 돌계단을 오르니 L자로 둘러싼 통창과 0.1% 불순물도 포함되지 않은 자연이 마주보고 있다. 영화의 롱 테이크 신 같은 이 장면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깊숙이 숨은 화가 유영희의 아틀리에로 가는 여정을 묘사한 것이다.
>> 좌_입구에 들어서 계단을 내려가면 텅 빈 공간 사이로 펼쳐지는 갤러리 겸 아틀리에.
우_유영희가 일본 건축가 구도 구니오와 팩스로 주고받았던 설계도
거대하고 웅장한 가구로 메워진 화가의 아틀리에를 상상하고 문을 열자 여백에 무한대의 공간이 펼쳐진다. 계단식으로 이뤄진 뻥 뚫린 공간을 타고 내려가면 마치 공사가 덜 끝난 듯한 거친 마티엘 벽의 양옆으로 걸린 작품들이 펼쳐진다. 파스텔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자연의 관계를 표현한 그림은 온화하고 정제된 그녀의 표정이나 성격과 무척 닮았다. 아틀리에에서 그녀의 작품만큼 주시되는 건 놀랍게도 비어 있다는 그 자체다.
>> 통창에서 비치는 햇살은 통로에 또 하나의 화면을 만들어 낸다. 작업실로 들어가는 이 길목에도 여전히 그녀의 작품이 걸려있다.
“내추럴과 모던함, 평온함과 청결함이 공존하는 아틀리에가 되길 원했어요. 특별히 인테리어라는 단어가 불필요할 만큼 간결한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 집에서 가장 새로운 아이템이요? 아마도 부엌에 있는 하얀 싱크대가 되겠군요.”
레몬 속에 그려진 침실
부엌으로 난 계단을 타고 올라 슬라이딩 도어를 열자 비밀스러운 공간이 펼쳐진다. 레몬 모양의 거대한 통창과 천장의 유연한 라인을 드러내는 침실. 레몬을 주제로 선보인 그녀의 작품만큼이나 침실에 드리워진 레몬 그림자가 오묘한 매력을 발휘한다.
“두 아이가 중학교에 다닐 무렵이에요. 1988년 저희 부부는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한 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곳에서 어느 날 우연히 햇볕이 잘 드는 부엌에 놓인 레몬을 보고, 영감을 받아 석고로 레몬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어요.”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생활하는 동안 그녀는 레몬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작품 활동을 선보였다고. 한국에 돌아온 유영희는 일본에서 인연을 맺은 건축가 구도 구니오 씨에게 이 집의 설계를 부탁했다. 그는 일주일 동안 유영희의 집에 머무르며 그녀의 생활을 직접 보고 느끼며 대략적인 집의 컨셉트와 설계를 그려 나갔다. 미완성인 설계도를 남긴 채 구도 구니오 씨는 미국으로 떠났고, 그녀는 팩스로 서신을 주고받으며 그림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뼈대가 갖춰지는 순간부터 창틀이 메워지는 마지막까지 집이 완성되는 1년여의 기간 동안 그녀는 매일 이곳에 들렀고, 그 모든 순간을 흑백사진으로 담아 두었다.
>> 좌_2층 계단 뒤편으로 보이는 욕실은 통창을 옆에 두고 있는 과감한 배치가 돋보인다. 또한 굴곡 지고 낮은 벽면은 절묘하게 욕실을 감싸고 있다. 우_욕실에서 바라본 침실 전경. 굴곡 진 우드 소재의 천장, 녹색을 고스란히 담은 레몬 창은 자연을 그대로 방 안으로 끌어들인다.
“구도 구니오 씨는 제가 그리는 레몬 모양의 침실을 만들어 보자고 하더군요. 외관은 천장의 둥근 곡선을 통해서, 안에선 통창으로 레몬을 표현했어요. 큰 아이디어는 건축가인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지만, 정작 이것을 실현시키는 건 제 몫이었어요.”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숨김없이 개방되어 있는 욕실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우아한 대리석이 깔린 욕실과 달리 칸막이 하나로 가려진 담담한 욕실은 어쩌면 이 집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플레이 위드 드로잉, (유희) 그 속의 아틀리에
통창에서 포실한 겨울 햇볕이 내리쬐는 통로를 지나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니 역시 유영희의 작업실이 숨겨져 있다. 들어서면 보이는 왼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다채로운 선들이 인상적인데, 한지를 벽에 붙여 작업하여 작품을 떼고 난 후 흔적이라고.
>> 좌_오일 파스텔로 그려낸 작품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작업실. 화가 유영희에게 드로잉은 즐거운 일상의 놀이다. 우_빼곡히 책이 꽂힌 책꽂이와 그녀의 작품이 놓인 책상.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책과 자료들로 가득하다.
그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손에 파스텔을 쥐고 한 획씩 줄을 그어 나가는데 그 선들이 모여 면을 만들고, 화면을 만든다. 그녀의 수많은 작품들이 ‘드로잉 유희(Play with Drawing)’란 제목을 달고 있듯이 유영희는 오일 파스텔을 통해 한지 위에 그리기와 놀이를 반복한다.
>>작업실 문을 나서며 옆으로 돌아서니, 그녀의 작품들과 만나게 된다. 벽면에 일렬로 작품들이 줄지어 있고, 책장에는 각종 미술 서적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사각사각 파스텔 소리를 내며 선을 이어가는 그녀가 바깥 풍경을 묘사한다.
“나뭇잎이 스치는 풍경, 웅성웅성한 벌레 소리와 공기, 바람의 감촉… 여기에 서서 가만히 귀를 열어두면 한지 위에 그것이 고스란히 표현되곤 하죠. 녹음이 짙은 여름도 좋고, 낙엽이 풍성한 가을도 멋지지만, 특히 겨울의 아틀리에는 환상적이에요. 눈이 내리면 하늘과 바깥 풍경이 모두 하얗게 변해 하나의 스크린이 완성되어 심취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된답니다.”
미술평론가 김홍희 씨는 ‘유영희의 그림은 철저히 자신을 반영한 유영희의 연장’이라고 표현한다. 아이러니하게 그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이 집 또한 유영희의 연장인 셈.
>> 작품명 Play with Dawing, Blue와 Orange. 한지 위에 아크릴릭. 오일 파스텔로 작업한 그녀의 대표적인 작품.
다시 복도를 지나 몇 발자국만 가면 갤러리 같은 회색빛 공간이 펼쳐진다. 아틀리에의 맨 끝에 있는 이곳은 새 작품을 기다리기 위해 모든 장식을 생략했는데, 마치 막 전시를 끝낸 갤러리처럼 보인다. 작품을 찬찬히 둘러보던 유영희는 비뚤어진 그림을 바로잡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낡은 벽과 바닥 등, 이 공간은 지난 8년의 시간의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요. 과거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고, 모든 창작의 힘은 시간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자연을 타고 오르는 레몬하우스
사방으로 펼쳐진 통창을 사이에 두고 있으니, 마치 숲에 둘러싸인 기분이 든다.
>> 작품이 걸린 아틀리에 한켠에서 부엌을 바라본 풍경. 올려다보는 구조로 지어진 덕분에 이렇게 어디서든 푸른 창을 느낄 수 있다.
산을 끼고 있는 이곳에 집을 짓기 전 구도 구니오 씨는 산에서 ‘내려다보는 집’이 아닌 ‘올려다보는 집’을 짓자고 제안했다고.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은 외관은 이런 아이디어에서 나온 구조로, 계절의 흐름을 놓침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 좌_숨겨진 외관은 L자 형태의 직선이 만나 면을 이루고, 하늘과 숲을 만나 하나의 장면을 이룬다. 우_ 레몬하우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주방. 아일랜드 키친 바 역할을 겸하는 이곳은 마치 숲에 둘러싸인 듯 창을 통해 자연을 드리운다.
자연이 가진 터전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이 아틀리에는 이미 ‘REMON HOUS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 아틀리에는 언제든 열려 있어요. 제가 아는 사람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곳. 생각과 마음이 머무는 곳, 이곳이 바로 레몬하우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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